남자들은 로망을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로망’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로봇’이라는 존재다. 누구나 가슴에 로봇 하나쯤은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나이를 불문하고 집에 로봇 하나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든 것이 실제의 모습이다.
1991년, Banpresto(현 Bandai Namco)가 NES를 통해 처음으로 '슈퍼로봇대전'을 내 놓는다. 당시는 '크로스오버'라는 단어가 아직 생소하던 시대였지만 ‘건담의 정밀 사격과 마징가 Z의 근접 펀치가 한 맵에서 충돌’하는, 이 단순한 아이디어는, 로봇 애니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확실한 팬층을 만들어 냈다.
초기 작품들은 2D 스프라이트의 한계를 드러내며 기본적인 턴제 전투에 충실했다. 그러나 1993년 '슈퍼로봇대전 3'부터 슈퍼 로봇과 리얼 로봇의 대비를 강조하며 전략 RPG로서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다.
다만 초창기 시리즈는 팬서비스 중심의 '팬메이드' 같은 매력이 중심이었고, 오리지널 요소는 크지 않았다. 그에 반해 복잡한 시스템이 없던 그 당시가 오히려 순수한 재미 면에서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다.
이렇듯 어느 정도 협소한 포지션에 존재하던 시리즈는, 1997년에 발매된 'F' 시리즈를 시작으로 판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오리지널 스토리가 본격 도입되면서 각 작품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엮는 '대서사시'로 재 탄생하게 된 것이다.
2000년 '알파' 시리즈는 100만장 이상의 판매를 돌파하며 상업적인 전환점을 찍었고, 2000년대 중반 탄생한 'Z' 시리즈는 멀티버스 우주 전쟁 스케일을 확대시켰다. 2002년부터 발매를 시작한 'OG'(Original Generation)는 오리지널 캐릭터와 기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드코어 팬층을 키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10년대 들어 시작된 'V/X/T' 트릴로지는 모바일 버전과 멀티플랫폼으로 팬층을 글로벌화 시킨 작품이다. 특히 'V'는 어두운 톤의 서사로 ‘성인 취향’을 자극하며 호평을 받았고, 'T'는 슈퍼 로봇 중심의 자유도로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다.
하지만 슈퍼로봇대전의 행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느려지기 시작한다. 이미 초창기의 추억이 있는 유저들은 4,50대에 접어들었고, 최근 ‘잘 팔리는’ 장르도 아니었다. 이른바 MZ 세대들은 더 자극적이고, 쉬운 것을 원했고 말이다.
이러한 가운데 2021년 발매된 '슈퍼로봇대전 30'은 게임 속에 60여 개 작품을 녹여 내며 기네스북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만큼 팬들의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스토리의 산만함, 과도한 볼륨은 유저들에게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후로 더 이상의 ‘슈로대’는 등장하지 않았다. 팬들조차 ‘더 이상의 슈로대는 없는 것인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 버린 시기였다.
그러나……
- 로봇의 ‘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4년 여의 공백을 깨고 '슈퍼로봇대전 Y'가 PC(Steam) 및 PS5, 스위치로 출시됐다. 이 작품은 '30'의 자유도 높은 선택 시스템을 계승하면서도 선형 스토리로 안정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슈로대Y는 시리즈의 ‘무난함’을 대변한다. 34년 전통을 두 어깨에 올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변화가 아닌, 현실에 안주하는 ‘안정감’을 택했다.
Unity 엔진을 사용해 제작된 슈로대Y의 비주얼은 풀 3D를 지향하지만, 결과는 ‘다채롭지만 능숙하지는 않은’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요약된다.
전투의 연출은 시리즈의 강점인 화려한 볼거리를 잘 제공하고 있다. 마징가 Z의 로켓 펀치가 발동할 때, 입자 효과와 배경 왜곡이 어우러지며 화면을 압도하는 등 나름의 멋진 연출과 더불어 시리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부분들도 다수 존재한다.
다만 이것이 전작보다 나은 비주얼을 보여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니티 엔진으로의 변화는 UI의 (부정적인) 변경을 가져왔고, 전투 애니메이션 길이가 길어지면서 프레임 드랍이 심각하게 발생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전작인 슈로대30의 게임 화면
심지어 PC버전에서도 풀HD 해상도까지만 지원했다. 풀HD가 최고의 선택이 되었던 시기는 이미 10년도 전의 일이다. 무엇보다 보는 맛 중의 하나인 필살기 연출 화면이 전작들보다 밋밋해졌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엔진의 변화되며 그만큼 100%의 능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다음 작품에서는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다.
특히나 다음 작품에서는 더 높은 해상도의 지원과 더불어 연출 스킵 최적화가 필수로 들어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전 작들의 해 보지 않은 유저들에게는 오히려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기존 팬들이라면 이러한 Y의 모습이 아쉬움으로 남는 모습일 수 있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많지만 일부 불편한 요소들이 생겨나며 유저들의 ‘플레이 경험’을 부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사람들은 9가지의 긍정적인 부분이 있어도 단 한 가지의 부정적인 경험을 느끼게 되는 순간 태도가 바뀌기 마련이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의 평가 역시 부정적으로 바뀐다.
- 전작의 단점은 어느 정도 메워졌다
슈로대Y는 턴 제 SRPG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접근성을 높였다. 강화된 '지원 요청' 시스템과 'SR 포인트' 재도입은 이러한 행보의 근간이 되는 부분이다.
전작의 복잡함을 간소화시켜 미션 선택도 직관적으로 변했다. 난잡하고 두서없던 스토리 라인도 깔끔해졌다.
스토리가 선형 구조로 진행되다 보니 자유도 있는 플레이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더 긍정적으로 다가올 만하며, 유저들의 반응 또한 더 낫다는 의견이 훨씬 많다. 기자 역시 전작보다 이번 슈로대Y가 좋은 점에 이 부분을 1순위로 꼽고 싶다.
전반적인 난이도는 상승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는 개개인의 플레이 스타일과 실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난이도의 경우 부담 없이 초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설정되어 있고(이는 아마도 신규 유저를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전작보다 더 쉽거나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질 만한 부분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에 반해 하드 모드는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비슷한 장르인 ‘파이어 엠블렘’의 난이도처럼 기력 게이지나 맵 병기 타이밍 등 여러 부분을 세심하고 적합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클리어가 쉽지 않다.
- 이번에는 안정을 선택한 당신, 다음은 어떤 행보를 보여주실 건가요?
슈로대Y는 확실히 ‘안정’을 선택한 작품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최대한 유지하려 했고 새로운 변화 요소도 거의 없다. 여기에 전작의 불만을 선형화 된 스토리 라인으로 해결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찌 보면 4년 만에 나온 작품임에도 시리즈의 팬들이 느끼기에는 밋밋하다는 감정이 들 수도 있다. 여기에 유니티 엔진으로 변경되며 최적화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모습도 보이고, ‘모바일 게임’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전작들보다 못하다는 느낌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4년 만에 나온 ‘신작’ 이라는 것이다. 물론 기대했던 일부 팬들에게는 오히려 ‘나오지 않은 것만 못 한’ 작품일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나와 준 것 만으로 감사하다. 이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과연 슈로대의 신작은 나오지 않는 것인가’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이 바로 팬들 아니던가.
시리즈가 계속 발매가 되어야 다음이 있다. 만약 슈로대Y가 발매되지 않았다면, 다음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확실한 단점들이 있기는 하나 그에 상응하는 장점도 있기에 결코 나쁜 작품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단점’들은 대부분 최적화에 집중되어 있고, 이후 작품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다음 작품에서는 안정화 다음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주게 될 지가 궁금하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