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루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

판을 깔아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2025년 01월 24일 14시 37분 01초

1월 23일 LCK 컵 3라운드 경기에서 젠지는 OK저축은행 브리온에게 완패를 당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자, 최근 젠지에게 연패를 기록중이던 OK저축은행 브리온의 대반격이었다. 심지어 2대 0 완승이다.

 

OK저축은행 브리온 팀이나 팬들에게는 정말 짜릿한 승리였을 것이다. 사실상 LCK 컵에서 2패를 기록한 상태에서의 첫승이 젠지다. 대장전에서 한화생명e스포츠는 패했지만 OK저축은행 브리온은 대신 승리를 거뒀다. 

 


 

반면 젠지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쵸비와 캐니언의 플레이도 좋지 못했다. 

 

OK저축은행 브리온은 이적생 ‘클로저’의 활약과 더불어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가 빛났다. 물론 아쉬운 플레이들도 있었지만 선수들의 단합된 힘과 집중력이 거함 젠지를 무너트렸다.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후반부 운영 능력 또한 상당히 좋아졌다. 

 

무엇보다 쵸비를 요소 요소마다 먼저 쓰러트리며 승기를 잡은 것이 컸다. 덕분에 쵸비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쵸비를 쓰러트리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젠지의 플레이가 심하게 좋지 않았거나 스스로 자멸한 것도 아니다. 물론 좋은 폼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는 OK저축은행 브리온이 잘 했던 것이 컸다. 이것은 경기를 본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경기도 재미있었다. 일방적으로 한 팀이 이기는 경기를 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바뀌고, 적절한 교전이 이어지면서 긴장감 있는 경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올 시즌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는 팀으로 변모한 OK저축은행 브리온과 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젠지가 만나면서 상당히 활발한 플레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반면 2경기로 진행된 한화생명e스포츠와 농심 레드포스의 경기는 한화생명e스포츠가 2대 0, 이변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며 끝났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좋지 않았다. 팬들조차도 지루함을 느낄 만한 경기가 펼쳐졌다. 

 

1세트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벌리며 20여 분까지 크게 앞서 나가던 한화생명e스포츠는 아타칸에 앞 교전에서 완패하며 경기를 비슷한 분위기로 몰고 가더니 결국에는 밀리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어렵게 다시 승기를 잡으며 결국 승리하기는 했지만 6천 골드가 넘는 골드 차이와 심지어 먼저 한 명을 끊고 4대 5로 펼쳐진 아타칸 앞에서의 한타 싸움에서 패하는 등 실망스러운 플레이가 이어졌다. 

 


경기 초반 벌려 놓은 큰 차이를 교전 한 번으로 원점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2세트에서는 경기 시작 후 20분이 지나도록 첫 킬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연출됐다. 라이엇 게임즈가 작정하고 교전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메타에서 20분이 넘는 시간동안 0킬이라는, 상당히 지루한 경기가 이어졌다.

 

물론 농심 레드포스가 1세트를 패한 이후 상당히 조심스러운 운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한화생명e스포츠 역시 만만치 않았다. 20분 내내 양측 간에 발만 담그는 식의 교전이 이어졌고, 오브젝트에서도 큰 교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전 역시 확실하게 싸우기 보다는 적당히 딜 교환을 하다가 위험 상황이 되면 서로 몸을 사리는 식의 패턴이 이어졌고, 적극적인 움직임도 많지 않았다. 젠지나 T1 같은 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회를 만들며 다양한 메이킹을 시도하지만 한화생명e스포츠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전력 차이가 제법 나는 상대였음에도 말이다.  

 


LOL은 미니언 사냥 RPG가 아니다

 

그러한 만큼이나 경기 역시 상당히 맥 빠지고 긴장감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경기 중계 창에는 이를 성토하는 수많은 시청자들의 비난이 이어졌으며, ‘한화생명e스포츠 경기는 원래 이렇게 재미없나요?’, ‘항상 한화생명e스포츠 경기는 지루해’ 같은 글들이 수 없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왜 팬들은 한화생명e스포츠 경기에 재미없다는 반응을 쏟아 내는 것일까. 반대로 농심 레드포스에 대한 불만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서로 지루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그 화살이 한화생명e스포츠에게 주로 쏠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 이미 재미없는 팀으로 낙인 찍혀 있다

 

일반적으로 상위권 실력을 가진 팀과 하위권 팀 간의 경기는 아무래도 하위권 팀이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력 차이도 차이지만 강팀에게 승리를 하기 위해 신중한 플레이를 하거나 부족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특정 선수를 키우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 강팀 입장에서는 보다 능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자신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기 초반부터 승기를 잡아 그 이득을 크게 굴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레이의 대표적인 팀들이 젠지와 T1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약팀이 소극적인 경기를 펼친다고 해도 강팀이 이를 ‘참교육’ 시켜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경기의 템포도, 지루한 경기가 줄어들기도 하고 말이다. 강팀마저 이런 자세를 취한다면 어제의 2세트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화생명e스포츠는 달랐다. 굳이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는 의지가 크게 없었고 간간히 펼쳐지는 교전에서도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적당히 재 보는 교전을 펼치지만 실제 킬이 나오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이 정도에 그친다면 ‘오늘 따라 루즈한 경기가 펼쳐지네’ 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한화생명e스포츠의 이력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다. 

 

23시즌 킹겐과 제카, 그리고 바이퍼를 영입하며 단숨에 우승권 전력으로 급부상한 한화생명e스포츠는 그러한 만큼이나 팬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항상 눕는 픽에 후반을 바라보는 운영으로 이미 그 당시부터 ‘재미없는 경기를 하는 팀’으로 각인되어 왔으며, 어딘가 막혀 있는 듯한 답답한 플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24시즌에서는 그러한 양상이 조금은 나아졌다.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며 체급이 더 높아졌고, 이제는 확실한 강팀이 되었기 때문이다.

 


쌍포 메타에서 그나마 ‘덜 지루한’ 게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플레이의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23시즌보다는 덜 하지만 아직도 후반 지향적인 픽의 비중이 높았다. 그나마 간간히 화끈한 경기를 보여준다는 점이 긍정적이기는 했다. 

 

덕분에 최상위권의 로스터를 갖추고 있음에도 젠지처럼 시원 시원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팀이라는 인상보다 ‘항상 눕는 팀’, ‘경기가 지루한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팀이 됐다. 

 

그렇다 보니 한화생명e스포츠가 눕지 않으면 중계진이 ‘한화생명이 달라졌다’고 언급을 하거나 하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결국 어제 경기의 반응은 이렇듯 한화생명e스포츠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이는 구 ‘리브 샌드박스(현 BNK 피어엑스)’ 가 화끈한 플레이를 펼친다는 이미지와 완전히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심지어 ‘제발’ 싸우라고 만든 메타에서 20분 동안 단 1킬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니 더더욱 시청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일 리가 없었다. 특히나 이번 LCK 컵의 경우 새로운 패치와 더불어 피어리스 드래프트 도입으로 경기 시청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대조되는 느낌이기도 했고 말이다. 

 

사실 젠지는 비록 패했지만 경기 자체는 재미 있었다. 이는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부분이다. 반면 한화생명e스포츠는 승리했어도 재미없는 경기를 했다. 팬들이 강팀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히 승리 만이 아니다. 얼마나 재미 있는 경기를 보여주는지도 상당히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리브 샌드박스’나, 과거의 ‘농심 레드포스’가 팬들에게 인기 있었던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교전 중심의 LPL의 분위기를 선호하는 것 역시 그러하며, 20 시즌 ‘담원 게이밍(현 디플러스 기아)’이 팬들에게 높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 역시 ‘너구리’를 앞세운 공격적인 플레이가 크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담원은 정말 싸움닭 그 자체였다

 

- 올 시즌 모든 팀들이 빠르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LCK는 상당히 운영에 특화된 리그다. 이는 이전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부분이기도 하며 LPL과 대조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킬이 많이 나지 않는 경기들도 많았다. 지겹게 교전을 하지 않다가 단 한 번의 한타로 경기가 끝이 나는 상황도 있었고, 30여 분 동안 아예 킬이 나오지 않은 경기도 존재했다. 

 

심지어 경기가 종료되고 양 팀의 킬 합이 한자리 수인 경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LOL e스포츠 팬들이 한 목소리로 제발 교전을 좀 하라고 성토를 할 정도로 보는 재미 면에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리그이기도 했다. 

 

중계를 하는 중계진조차 ‘운영 위주의 게임도 나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지루한 상황을 수습하는 멘트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을 정도다. LOL e스포츠는 미니언을 잡는 것을 감상하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기 위해 시청하는 것이지 ‘운영의 묘미’ 같은 것은 전혀 관심 대상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담원 게이밍이 팬들에 많은 인기를 얻었던 것도 이렇듯 교전 중심의 팀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심지어 이러한 팀이 몇 년간 하지 못했던 롤드컵 우승까지 했으니 더 할 말이 있을까. 

 

‘너구리’는 자신이 수없이 죽으면서도 결국 무력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줬다. 전혀 ‘LCK스럽지 않은’ 모습에 팬들은 열광했고,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나마 24시즌에는 어느 정도 운영에서 교전 중심으로 LCK의 흐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만큼이나 보는 즐거움이 더욱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올 시즌은 교전을 장려하는 새로운 패치와 더불어 피어리스 드래프트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서 팬들 역시 많은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보다 적극적인 교전이 이루어지는 재미 있는 경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되었고 말이다. 

 

실제로 그간 지루한 양상의 경기를 많이 했던(물론 이는 팀 전력이 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OK저축은행 브리온과 DRX는 올 시즌 새로운 감독과 선수들을 영입하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OK저축은행 브리온이 젠지에게 승리를 거둔 이면에는 과거와 달라진 적극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LCK 컵에서 보여 준 이들 팀들의 플레이는 과거처럼 심심하지 않았다. 팀 자체도 공격적으로 변했고, 경기의 지루함도 사라졌다. OK저축은행 브리온은 완전히 과거와 다른 느낌의 팀이 되었으며, DRX 역시 새로운 감독에 LPL 출신의 ‘유칼’을 영입하며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듯 OK저축은행 브리온은 지금까지의 재미없던 게임 스타일을 버리고 빠른 템포의 경기를 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반면 아직도 한화생명e스포츠는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이미지다. 아마도 현재 가장 재미없는 경기를 하는 팀을 꼽는다면 한화생명e스포츠의 비중이 높지 않을까 싶다. 

 

사실 도란에서 제우스로 탑이 교체되면서 긍정적인 기대를 했다. 제우스는 보다 능동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이고, 팀 전력이 강화된 만큼 이전보다는 더 재미 있는 경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특히나 어제의 경기는 이러한 상황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이는 사실상 최인규 감독이 연임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부분인 것도 맞다. 실제로 한화생명e스포츠가 지루한 경기를 한다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최인규 감독이 부임했던 시기인 23, 24 시즌에 만들어졌다. 물론 모든 것이 감독의 책임일 리는 없지만 적어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만큼이나 팀 스타일도 올 시즌 크게 변하지 않았고 말이다. 

 

경기 내용으로 인해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그다지 진귀한 풍경이 아니다. 한 해에도 수많은 경기에서 이러한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최상위권 전력을 가진 팀의 경기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보통은 하위권 팀들, 혹은 중위권과 하위권 팀 간의 경기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젠지나 T1, 디플러스 기아 등의 경기에서는 많이 나오지 않는데 한화생명e스포츠 경기에서 유독 이러한 평가가 많다는 점은 절대 가볍게 볼 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 멤버로 왜 이런 플레이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많은 팀들이 새로운 패치와 피어리스 드래프트 하에서 보다 재미 있는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CK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그러나 한화생명e스포츠만큼은 여전히 그 행보가 제 자리인 것처럼 보인다.

 

LCK 팬들이 잘 보지 않는 종이 일간지에 자랑 삼아 우승 광고를 내는 구 시대적인 행보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한화생명e스포츠의 자세가 아쉽다. 새로운 영입 선수를 소개하는 고 퀄리티 영상도 좋고, 자기 만족의 광고도 좋다. 다만 팬들이 원하는 것은 이보다 ‘재미 있는 게임’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했으면 한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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